어른들을 위한 국어책, 국어를 즐겁게
이 책은 내 입장에서 보기엔 한 마디로 「어른을 위한 국어책」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해 주면 아마 “자기만 재미있어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어른” 정도로 취급받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말에 담긴 의미’를 유추하는 재미를 찾기보다 ‘의미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말’에 더 집중하는 시기일 거 같아서 그렇다. 그러니 재미있는 단축어들도 많이 만들어내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가며 「말」을 이용해서 의사소통하며 의도를 전달하려 애쓰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내 의도와 다르게 남에게 의미가 전달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오해하기도 혹은 본의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내 말을 선의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내가 과연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정말 한국말을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되고, 그런 의문을 가진 어른들은 스스로 글쓰기, 말하기 같은 여러 표현 방법으로서의 국어에서부터 본인의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언어로 공부가 확장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나에겐 그랬다. ‘아니 이렇게나 많은 재미있는 언어의 어원과 유래에 대한 이야기라니…’ 저자가 너무 쉽고 재밌게 이야기들을 풀어 주셔서 마치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진도 안 나가고 해 주시는 삼천포로 빠져버린… 그렇게 실제 수업 진도보다 재미있는 옛 이야기들을 듣는 기분이었다.
「국어를 즐겁게」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쉽게 읽힐 소재들이 들어 있는 책일 수도 있겠다. 내겐 꽤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국어를 어떻게 공부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들을 활용한 언어들을 왜 그렇게 사용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이나,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어떤 대명사들에 대한 기원과 유래는 나 자신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좋은 말을 하는 습관과 함께 일상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영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 모든 어떤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를 질문하고 고민하는 건 결국 모든 것이 공수래공수거임을 깨닫는 기반이 될 것이기에.
저자가 책의 서문에 얼굴, 말의 습관으로 글의 포문을 열어 좋은 언어의 습관과 언어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 잡아주는 부분이 참 좋았다. 무분별하게 유행어를 따라 사용하다가 나쁜 언어 습관이 있음을 깨닫고 개선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크게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이후의 책의 여러 작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전체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아주는 역할을 한거 같다.
사실 이 책을 펼치면서 제일 먼저 눈을 잡아끌었던 건 다름 아닌 저자의 이름 앞 수식어였다. “민속연구가 박호순”. “내게 ‘민속연구가’라는 게 느닷없이 왜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생각해봤다. 그렇게 생각이 길어지다가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할 어떤 문구가 있을까?” 하고 잠시 고민이 들더라. 그러다가 “지금부터 쌓아가면 되지 뭐” 하고 그냥 털어버렸다.
10년 뒤 내가 나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소프트웨어 품질 연구가’ 혹은 ‘소프트웨어 관련 블로그 작가’ 정도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대부분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라는데 ‘대표’, ‘이사’, ‘부장’ 같은 직급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란 건 ‘난 이거에 관심이 있어요.’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이걸로 생산적 활동을 하고 있어요.’라는 의미도 되기에 남이 정해주지 않은, 나 자신의 호칭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거 같다.
내 직업이 ‘요새 핫한’ 컴퓨터장이이다 보니 평소에 자기계발 서적이나 전공 서적만 들이 파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오랜만에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아름다운 우리 말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어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